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나의하나님

 

 2004년도 우연히 기독서점에서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모’ 라는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집에 와서 단숨에 다 읽고 얼마나 은혜가 되던지 같은 사모의 길을 가면서 이런 분도 계시구나하며 위로와 위안이 되었다. 그때부터 원장님을 한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은 작은 소망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구역예배 날짜를 바꾸면 큰 일 나는 노인 집사님이 계셨기 때문에 내겐 두란노 시간이 맞질 않았다.

 

인천에서 개척한지8년차 되었다. 7살 된 아들과 나와 목사님 이렇게 세 식구가 개척을 했다. 그 썰렁한 빈자리가 채워지기가 왜 이렇게 더딘지... 돕겠다고 온 시댁식구들로 인해 목사님과 나는 너무나 큰 마음고생을 하고 결국 가족들이 다 떠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작정기도를 시키셨다. 작정기도가 끝나고 우린 함께 따라 이사 온 집사님 2가정과 부천에서 새로 개척을 시작했다. 교회공사로 거의 한 달을 서너 시간 자고 일하면서 지내는 동안 갑자기 집은 계약이 잘 못되어 이사온지 2주만에 또 이사를 가게 되는 일이 생겼고, 이사 간 집의 보증금은 월세를 못 내고 다 까먹으면서 재개발로 인해 나가야만 하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러면서 내 육신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쳐가고 있었다. 결국 여러 가지 스트레스와 물질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2005년 그해 9월 새벽에 두통과 함께 감각이상이 오면서 반신마비로 쓰러지고 말았다. 병원에선 병명을 찾지 못하고 뇌척수염 또는 뇌척수암 이라고 추정하였고, 수술을 하려면 척수에 손을 대야하는데, 그곳은 건드리는 순간 전신마비가 오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릴수도 없는 곳이였다. 그리고 병원비 때문에 더 이상 검사를 하지 못하고 병원을 나와야만 했다.

 

젊은 나이에 이게 뭔가 라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모든 것에 의욕을 잃게 되었다. 2006년 1월 새해가 되면서 나는 목사님과 기도원에서 한 주간을 기도하며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연히 어떤 분이 내게 오더니 자기가 나가고 있는 곳이 너무 좋다고 하면서 나에게도 한번 나가보라고 하였다. 난 별 신경 안 쓰고 원장님이 누구냐고 물었는데 ‘설화영 원장님’ 이라고 말하는 것이였다.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귀가 번쩍 뜨였다. 그리고 나는 두란노를 1월 둘째 주부터 가게 되었다. 기도시간에 원장님이 나의 손을 살며시 잡아 주셨는데 너무 부드럽고 따뜻하면서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지금도 그때의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그해 원장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은 “염려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나를 계속 위로해 주셨고, 작년부터는 비전의 말씀으로 힘을 실어 주셨다. 벌써 2년 반이 되어간다. 나의 마음과 몸의 상태도 많이 회복이 되었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채워짐을 느꼈다.

 

결혼하면서 17년동안 집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 월세가 너무 아까웠다. 그 돈이면 교회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14번의 이사. 정말이지 이사하다 죽을 것만 같았다. 남편 목사님은 항상 속으로는 미안하지만 겉으로는 늘 어차피 우리의 인생은 나그네 인생이라 하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작년에 친정아버지가 73세에 폐렴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목회한다는 핑계로 효도한번 제대로 못하고 용돈한번 재대로 못 드린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프던지...... 홀로계신 친정어머니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 집에서 죽을 때 까지 사시겠다고 고집이 완고하셔서 나는 그냥 그런 줄만 알았다. 오빠도 있고 언니들도 있고 난 막내딸이라 생각도 못했는데 새벽에 하나님이 감동을 주셔서 친정어머니에게 가서 함께 살자고 남편 목사님도 너무 너무 좋아하신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기도 해 보시겠다고 하시더니 한 달 만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모든 게 순조롭게 이루어져 부천 이곳에 넓은 집을 마련하고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너무 꿈만 같았다. 아버지에게 못 다한 효도를 하게 되어 감사했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우릴 위해 뜨겁게 기도해 주시는 모습을 보며 곁에 동역자로 붙여주심에 감사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바울이에게는 늘 미안했다. 그래도 바울이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고 전도도 열심히 해서 학생부가 많이 부흥하게 되었다. 바울이에게 물질적 뒷받침이 많이 필요한 시기였을 때, 하나님께 기도만 했을 뿐인데 미국에 계신 바울이 고모부가 새벽에 바울이 얼굴이 떠올랐다고 하시며 공부 잘 시키라고 바울이 이름으로 미국에서 5000달러를 수표로 보내셨고, 바울이의 대학교의 학비를 모두 책임지시고 후원하시겠다고 하셨다. 개척11년 이제 하나님께서 서서히 열어 주심이 보인다.

 

교회도 점점 더 부흥케 하시고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되어짐이 감사하고 이곳 두란노의 설화영원장님을 통해 나의 사모상을 아름답게 바뀌게 하셨고, 가장 큰 능력은 변화라 하시며 이마에는 늘 겸손이라고 쓰고 다니라고 하신 그 말씀처럼 늘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원장님 정말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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