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저는 이상림 사모입니다.

먼저, 원장님께 감사하다는 인사의 말씀을 올려드립니다.

원장님! 

그동안 아비의 마음과 주님의 심장으로 잘 가르쳐 주심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불붙는 마음들을 많이 망설이고 절제하며 지내 왔는데 이번에는 절제가 안되네요.  

그동안 받은 큰 은혜들을 무엇으로 어떻게 다 표현하고 갚겠습니까마는 이렇게 나누는 것이 도리인것 같아 글을 올려 드립니다.


2007년 8월 8일 새벽

왕상 19장 4~21

이전에 엘리야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위로를 받은 적이 있어 ’오늘도 그 말씀으로 인도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은 착오였다. 4절 말씀에서 갑자기 원장님의 심경이 읽어지며(‘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모’의 책 내용이 부분적으로 생각나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북받쳐 흐느끼며 울게 되었다. 왜! 그렇게도 가슴이 아플까? 흑흑거리며 울다가 다시 성경을 보니 19~21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고 다시 눈을 씻고 보니 21절 말씀에서 필이 꽂혔다.


사실 3-4주전에 찬양하며 주님과 교재 시간에 ‘이 사모님들을 섬겨라!’는 마음이 강하게 와 닿았다. ‘여기서부터 시작이구나! 이일부터 하라고 하시는 구나! 여기 오신 사모님들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구나!’

작은 섬김의 마음으로부터 역사는 일어나듯이,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일을 맡기신다는 말씀처럼, 내게 사모님들을 향한 열정을 주셨다면, 내가 힘들어 이곳을 찾았을 때와 같은 심정으로 오신 사모님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께서 회복의 장소로, 라마나욧의 장소로 두란노를 선정하셨다면, 이곳에 들어오는 자마다 뒹굴고 어찌할꼬 어찌 할꼬 가슴을 찢으며, 대회개의 영이 임하고, 짓눌렸던 영성이 회복되고, 예언의 영이 임하며, 대부흥의 불길이 타오른다면 한국 교회는 희망이 있고, 사명을 가지고 소홀히 할 수 없고 기꺼이 해야 할 일이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뻐하시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이 일에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는데 마땅히 순종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마음을 주셨다.


지금은 너무나 부족하기에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더 다듬어져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는데, 19절 말씀에 왜 갑자기 그리고 건너가서 겉옷을 던졌을까? 8월 10일 원장님의 강의를 통해 권위의 상징인 옷에 대해 밝혀 주셨다.(주신 말씀에 해석들을 고민할 때 주님은 생각을 아시고 원장님을 통해 풀어주시는 일을 경험한다.)


21절 엘리사가 자신의 옛 삶을 청산하고 엘리야를 쫒았을 때 전폭적으로 그를 쫒으며 수종들 수 있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젠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나는 죽고 이젠 주님께서 나를 통해 사시므로 나로 인해 주님의 삶이 드러나기를 바란다. 이것이 내 삶의 이유이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나의 소망이기도 하다.


‘친히 저의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씻기시고 섬김을 보이신 주님, 이제 제가 주님의 발을 씻겨 드리겠습니다.’


주님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셨기에 나는 그 일을 찾고 있었다.

먼저는 가정의 남편이요, 자녀들이며, 이들을 향한 섬김이 넘칠 때 야곱의 축복처럼 담을 넘어 이웃과 세계로, 이 지구촌을 향해 그리스도의 진한 향기를 발하면서 십자가를 높이 들 것이다. 열방이 주님을 볼 수 있도록...


한명의 사모님이 변한다면, 한가정과 자녀들이 변화되고, 교회가 변화되고, 일당 100명,1000명, 10000명을 잡아도 400명 이상의 사모님들이 변화된다면 억을 넘는 어마어마한 주의 군사들이 주님의 길을 예비 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앞으로 보내시고 만나게 하실 사모님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할 것인데,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며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귀하고 엄청난 사역을 예비하시고 감당하실 설화영 원장님을, 약하고 힘이 없는 지극히 작은 자, 감히 신 들메를 들기도 감당치 못하는 나에게 원장님을 좇으며 수종들 수 있는 소원을 갖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어떻게 무엇을 수종들라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어찌되었건 확실한 것은, 내가 원장님의 사역에 무엇으로 동참하든 동참하라는 싸인인 것 같아 섬김의 빈자리를 찾다보니 이번 세미나 때, 사모님들의 간식부서에 헌금을 하기로 했다. 요즘은 그랄에 머물라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므로, 인내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결코 앞서지 않고 한걸음씩 주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순종하는 중에 있다. 요즘 까마귀들을 통해서 먹이시는 주님은, 과부의 두 렙돈도 받으시고, 한 병 기름도 부으라고 하신다.


아마도 이번 사모 세미나에 크신 하나님의 비밀이 있다는 것이 믿어진다. 분명 한 병 기름을 원하실 때는 주님의 계획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원장님의 강의처럼 주님의 놀라운 일을 기대하며 가끔씩 나를 힘들게 하는 인간적인 옷을 찢어버리고 거룩한 옷을 입기를 기도한다. 앞서 있던 소유자를 몰아내고, 소유케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비우는 만큼 채우시는 주님, 내가 약할 때 곧 강함이니라. 그래야 약한 나로 인하여 강하신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드러나기 때문이리라.

 

전주에서 초교파적으로 열린 사모 세미나는 나를 향한 세미나였다.

찬양으로 만나주신 주님은 찬양으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도대체, 찬양을 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데 찾아오시는 주님 때문에 찬양을 할 수가 없었다.

몇 마디만 하면,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누워 버리니, 주님은 그렇게 시간마다, 저를 어루만지시고, 말씀하시고 위로 하셨다. 그 당시, 몹시 피곤하고 지쳐 있던 나는 안내를 맡아 새벽부터 서둘러 가야했다.

‘주님 어떻게 해요, 제게 힘을 주세요.’ 하며 이번 사모 세미나에 내가 순종해야겠다는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주님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발한 주님의 방법으로 나를 감동 시키셨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행하셨다. 


한복을 입고 안내를 서야할 나에게 얼굴 맛사지를 받게 하시며, 피곤하여 먼 길을 새벽부터 가서 서 있어야 할 나에게 발 맛사지로 피로를 풀어주시고, 부족한 화장품들이며 그외 나의 필요들을 어쩜 그렇게도 자상하게 아시고 세밀히 간섭해 주시고 필요를 아시는지! 나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주님은 이런 시시콜콜한 것은 신경도 안 쓰시고 안중에도 없는 줄 알았는데...

하긴 명절날 나의 마음을 아시고 시장까지 조목조목 보아다 주셨던 주님께서 당연하시지!

시장까지 보아다 주시는 주님! 그날 나는 울면서 시장 보따리를 풀어 놓았었다.


지금은 주님께 배우는 시간이므로 주님께서 졸업장을 주실 때까지는 내가 앞서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인도함을 받는다. 내 손에 가지고 있으므로,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음으로,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것 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비우고 놓으므로 내려 갈 때까지 내려가서 짓밟힐 대로 짓밟힐 때, 주님 바라보며 주님의 심장을 갖게 하셨다.


원수 갚는 것을 주님께 맡긴 채, 나의 기도는, ‘저들이 저들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하므로 용서 하옵소서.’ 라고 하신 주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되었고, 결국 주님의 방법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누명을 벗겨주시고, 신실하신 주님께서 모든 자들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는 멋진 일을 보이셨다. 나를 그렇게 원수처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그날은 나도 모르게 천사가 되어 버린 듯, 그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용서까지는 누구나 의식적으로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결국,

사랑까지 요구하신다. 사랑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실 몇 년전 기도할 기력조차도 없을 때, 주님! 무언가 제가 점프를 해야 할 기회를 주셔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원장님의 책을 소개 받았을 때, 무언가 내가 이 분을 통하여 일어설 수 있겠다는 절박한 마음에 무조건 그 책을 달라고 하여 단숨에 읽기 시작하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며 읽었다.


그래 나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그래 나에게도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는데, 나도 이런 은혜가 있었는데, 이럴 때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몰라라 하시지 않고 다 개입 하셨었는데, 그렇다면 설화영 사모님과 내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설화영 사모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들과 영감들을 다 잡고 사모님 것으로 만드셨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구나! 주신 것들을 다 놓쳐버렸구나! 기회들을 놓친 것이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긴 결과는 내게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였고, 파선 직전에 이르렀다.


그 이후 금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영등포라는 것만 알고 버스타고 전철타고, 또 마을버스를 타고 희망에 젖어 기대하며 찾아갔다. 다른 것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모두 일어서서 찬양을 하는데 처음에는 너무 은혜가 되어 손뼉을 치며 찬양을 하는데 다들 그냥 찬양을 하는 것이었다.

‘이상하네.. 왜 이리 은혜가 되는 찬양을 손뼉 좀 치지 그냥 맹송맹송하게 손만 내밀고 찬양을 할까?’ 의문을 가질 때 한 사모님께서 “경배 찬양이 꼭 손뼉을 치면서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니예요.” 하시는 거였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라고 그 다음부터 손을 들고 찬양을 하는데 그 가사가 나의 마음에 어찌나 위로를 주며 소망을 주는지 그 가사에서 소망을 갖게 되었고 그 날 그 찬양을 통해 나의 가라앉고 눌려 있던 모든 것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함께 회개하며 침체되었던 나의 영성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눌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소망이 없어보였던 나에게서 찬양을 통해 새로운 싹이 돋아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 난 그 찬양의 힘으로 일주일을 살고 기다려왔다. 그 이후에는 선포기도가 나를 사로잡고 그 이후에는 말씀이 하나하나씩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요즘은 말씀 체질이 나의 기도의 소원이 되었고 이전에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그렇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주님의 사랑이 느껴지고 조금씩 깨달아지기 시작하면서 나의 눈은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창피한 줄도 모르고 아무데서나 울보가 되어버렸다.  

내 생활은 이전과 비교 할 수 없었지만, 마음의 평안을 주시니 이것이 바로 천국이 아닌가?


요즈음 남편 목사님과 서로 마주보며 우리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인지, 남들이 보면 대책 없어 보이고 웃긴 일이겠지만 사실은 너무 평안하고 행복하다. 이렇게 가까이서 주님의 사랑과 관심 속에 있으니, 이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아닌가? 생각한다.


몇 주째 경배와 찬양을 주제로 강의하시는 원장님의 강의는 나의 속을 시원하게 해 주셨다. 어쩜 요즘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가슴 벅차고 황홀하고 어디 표현할 길 없어 주님과 나만의 비밀스런 일들 속에 있었는데 꼭 내속에 들어오셨다가 나가신 것처럼 그렇게 표현을 잘 하실까? ‘아! 원장님께서도 이런 것들을 다 경험하셨구나!’ 경험한자만이 말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어디 어떤 성악가가, 이런 것들을 말할 수 있겠는가? 무어라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는데, 나에게서 일어난 일들을 말씀하시는 것 같아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고 ‘아멘’만이 나의 할 일이었다.  


창세기 26장에 이삭이 이집트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랄에 머물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고난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요, 그 고난을 통해 주님의 크고 위대하신 축복을 주시기 위함임을 알게 하신 주님! 오늘날 나에게도 ‘그랄에 머물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은 참혹한 것만 같았는데 인내하며 ‘우물물아 솟아나라! 솟아나라! 넘치도록...’ 주님 바라보고 순종했더니 나에게 엄청난 우물물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삭의 우물이 터지고 마침내 거부가 되듯이 상림이의 믿음의 우물이 터져 마침내 거부가 되었더라...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나를 주님의 보 증수표로 사용하옵소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설화영의 하나님 ,......

그리고, 그랄에 머무르게 하신 이상림이의 하나님,

상림이를 기억하사 우물을 터트리셨으니 이 우물이 이삭의 축복이 되게 하시고, 물질의 거부, 믿음의 거부가 되게 하셔서 나로 하여금 담을 넘는 주님의 향기가 되게 하소서.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주님의 종들을 세우는 일에 종의 가정을 사용하소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나의 스승이 되신 원장님! 제가 원장님을 사모하나이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사모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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